[판타지소설]《진이, 지니 》 (정유정 장편소설)

은행나무, 386페이지
스포를 싫어하기에 추천 책은 제목만 보고, 내용에 대해서는 일절 검색해보지 않는다. 산뜻한 연두색의 책 표지를 보고 기대감에 얼른, 책을 넘겨 읽기 시작했다.
P73
내 가슴 위에 얹힌 작은 머리의 무게에서 기이한 평온을 느꼈다. 규칙적으로 뛰는 아이의 심장박동이 안도감을 주었다.
왜 작가님은 '보노보'라는 동물을 택했을까. 사실 초반에는 읽으면서 조금 불편했다. 사육사, 밀매, 보노보라는 익숙하지 않고 멀게만 느껴지는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었을까. 그 이유에 대해서 작가는 책의 마지막의 작가의 말에서 명확히 밝혔다.
" 주인공의 육체적 존재가 될 '누군가'는 인간이어서도, 인간과 너무 다른 존재여서도 안 되었다....... 보노보는 DNA가 인간과 98.7퍼센트 일치하고, 인간만큼 공감 능력이 뛰어나며, 침팬지보다 감정이 훨씬 깊고 풍부한 데다 지능도 아주 높다. 인간 남성에 가까운 기질을 지닌 침팬지와 달리 종의 개성이 인간 여성 쪽에 좀 더 가깝다고도 한다. 주인공 진이의 또 다른 페르소나인 지니가 인간도, 침팬지도 아닌 보노보여야 했던 이유다."
100페이지를 넘어가면서 영화가 시작되는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124p
주먹을 틀어쥐고 거울 속 나를 노려보며 넌 누구냐고 묻는 성난 지니였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나도 간절하게 알고 싶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왜 네가 있는지. 나는 어디로 갔는지.
129p
이제 의문의 여지없이 확신할 수 있었다. 지니가 내 물리적 존재이며, 나는 지니의 심리적 존재라는 사실을.
199p
다정한 그녀의 눈은 35년이라는 생물학적 시간과 일치하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눈이었다. 삶에 단련된 자 특유의 무덤덤한 눈이었다. 나로서는 일흔 살이 돼도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단단한 눈이었다.
이진이, 지니, 김민주.
이 세사람의 과거와 현재가 계속해서 나왔다. 정신없이 따라 읽고 나서는 지쳐버렸다.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다니! 작가님 진짜 멋지다. 게다가 작가의 말조차 너무 멋지다!
<작가의 말 요약>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시간의 어떤 순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는 한 문장을 읽었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닥쳐온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어떤 순간'을 떠올렸고, 노트를 꺼내 "생의 가장 치열했던 사흘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줄거리와 개요를 전력 질주하듯 썼다.
나는 이 소설을 죽음 앞에 선 한 인간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자, 삶의 마지막 희망을 찾아 떠나는 모험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언젠가는 반드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어떤 순간이 온다. 운명이 명령한 순간이자 사랑하는 이와 살아온 세상, 내 삶의 유일무이한 존재인 나 자신과 작별해야 하는 순간이다. 그때가 오기전까지, 치열하게 사랑하기를. 온 힘을 다해 살아가기를...